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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황씨 시정공파

상주 황씨 시정공파 깃발 디자인(비공식, 자작)

상주 황씨 부족
상주 황씨 시정공파
거점 프리타운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신영 공화국
언어 한국어
관련민족 타마르 족
사카니우 족
병만 족
시은 족
정철 족
원희 족
상주 황씨 부족은 프리타운의 주류 민족이다.

상주 황씨 역사

상주 황씨(尙州 黃氏)의 시조 황석주(黃石柱)는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내고 상주국(上柱國)에 이르렀다고 한다.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된 4세손 황을구(黃乙具)가 소윤(少尹)을 지내고 상주(尙州)에 거주하기 시작하여 상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5세손 황하신(黃河信)은 종부시 영(宗簿寺令)을 지내고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6세손 황사간(黃士幹)은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지내고 영의정(領議政) 상평 부원군(尙平府院君)에 추증되었다.

7세손 황효원(黃孝元)은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예빈시주부, 예조좌랑·좌헌납·이조정랑, 사복시윤(司僕寺尹) 등을 지내고,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즉위에 협력한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 호조참판에 승진되고 상산군(商山君)에 봉하여졌다. 1458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 형조참판을 거쳐 충청도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로 나갔으며,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다가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 1460년 한성부윤, 1467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1470년(성종 1) 우참찬이 되었으며, 벼슬이 종1품에 이르렀다. 1471년 성종의 즉위를 보좌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이 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8세손 황준경(黃俊卿)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9세손 황기분(黃耆賁)은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내고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10세손 황세근(黃世懃)은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11세손 황우한(黃佑漢)이 1574년(선조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591년 도승지에 올랐으며, 1600년 지중추부사에 이어 부제학이 되었다. 1605년 호조참판·병조참판을 지내면서 사옹원제조를 겸하였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어 졸하였다.


신영 공화국의 상주 황씨 시정공파 역사

자세한 역사 기록은 없으나 현재 밝혀진 신영 공화국 영토 내의 상주 황씨 시정공파는 21대손부터 시작된다.

22대손과 23대손을 거쳐 볼코프 대통령은 이곳에서 24대손이다.

적우로 편입되는 순간에도 이곳엔 어떠한 다른 부족의 침입도 없이 순혈을 이어 왔으며 적우에 편입 되고 나서도 프련의 가입국이 되는 동안에도 다른 부족의 침입이 없었다.

근처의 밀양 박씨도 있었으나 딱히 충돌은 없었다.